제2의 쌍용차 사태로 불리는 하이디스 기술 먹튀 사건. 하이디스는 외투기업의 먹튀를 두 번이나 당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국내 대기업 계열사 665개사 중 91개사(13.7%)가 외국인 투자기업(이하 외투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력은 있지만 자본은 부족한 중소기업에 해외투자가 집중되는 경향이 점차 깨지고 있는 것. 이처럼 대기업까지도 외국인 투자자의 손길이 닿고 있는 가운데 외투기업의 ‘먹튀’ 방지책은 여전히 묘연하다. 특히 외투기업의 먹튀는 기술력을 뺏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량 해고 사태를 수반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도 발생시킨다.

◇ 외투기업, 혜택은 ‘묵직’, 책임은 ‘솜털’

외투기업이란 외국인(외국법인 포함)이 총 주식이나 출자총액의 10% 이상을 소유한 기업을 말한다. 국내에서 외투기업이 급증하기 시작한 시기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다. 특히 첫 3년간 국세(법인세, 소득세)와 지방세(취득세, 등록세, 재산세)의 100%, 이후 2년간은 50%를 감면받는다.

또 임대료의 50~100%를 감면받거나 고용창출 및 연구시설 설치, 사업 투자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이 부여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외투기업은 2014년 1만5,000여개에서 2016년 1만7,000여개로 매년 증가추세다. 문제는 국내에서 혜택은 혜택대로 챙긴 외투기업이 ‘먹튀 논란’에서도 자유롭다는 점이다.

실제로 ‘곶감단지 한국’이라는 오명 속에서 수많은 국내 기업들이 먹튀 피해를 입었다. 대표적인 외투기업의 먹튀 사례는 ‘쌍용차 해고 사태’와 ‘하이디스 기술 먹튀’ 사건이다. 두 사건 모두 중국 기업이 먹튀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쌍용차는 2004년 중국 기업 상하이차에 인수된 후 5년만인 2009년 1월 매각됐다. 상하이차는 5년 동안 단 한 대의 신차도 출시하지 않았고, 디젤하이브리드 기술만 중국으로 유출됐다.

하이디스는 외투기업의 먹튀를 두 번이나 당했다. 하이디스는 2002년 중국 기업 ‘비이오그룹’에 인수됐다. 비이오그룹은 하이디스의 LCD기술을 빼돌린 후 2006년 회사를 부도처리했다. 1년 뒤인 2007년 하이디스는 또 다시 대만 기업 ‘이잉크’에게 인수됐지만 이잉크 역시 약속했던 투자는커녕 2015년 공장을 폐쇄했다.

하루아침에 기술과 일터를 뺏긴 노동자들의 참담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외투기업의 기술 먹튀는 법적으로 입증이 쉽지 않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먹튀 자체보다는 회계조작으로 인한 부당해고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 쌍용차 노동자들은 물론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아직까지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 정치권, 뒤늦게 안전장치 마련하지만...

먹튀 방지를 위한 견제 장치가 거의 전무한 국내와 달리 해외에서는 외투기업에 대한 제재가 엄격한 편이다. 미국은 국가경제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을 때 아예 투자를 받지 않는다. 또 불합리한 구조조정이라고 판단될 경우 지원금을 회수한다. 프랑스는 종사자 1,000명 이상의 외투기업이 철수할 때 사용자가 다음 인수자를 직접 찾고, 정당한 폐쇄 사유를 입증해야 한다.

이에 국내에서도 외투기업의 먹튀를 방지하기 위한 법안들이 속속 발의되고 있다. 하지만 ‘투자 위축’ 우려 때문에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산업부는 외투기업 지분 비율을 30%이상으로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지난 7월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는 내용의 일부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사실상 가로막힌 상황이다.

외투기업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법안들이 발의되고 있다. <뉴시스>

다만 현재 20대 국회에서는 조배숙 국민의당 의원과 이찬열 국민의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관련 개정안이 계류돼있다. 조배숙 의원은 일정 규모 이상의 외투기업이 폐업하고자 할 때 산업부장관에게 신고하고, 신고 내용을 조사해 적절한 조치를 명할 수 있도록 했다. 이찬열 의원은 외투기업의 상시 근로자수가 10% 이상 감소할 경우, 미리 산업부장관에게 신고하고 신고 내용을 외국인투자위원회에 상정해 심의하도록 했다.

이찬열 의원은 지난 7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외투자본 문제점과 입법방향’ 토론회에서 “외투기업이 국내 기업을 먹잇감 삼아 기술을 탈취하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면서 “한국인은 평당 몇 십만 원을 주고 임대할 곳을, 외투자본은 1원에 임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외투자본이 고용을 창출했나라고 생각해본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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