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노동자 인권단체인 ‘반올림’이 지난해 10월 31일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에서 반도체와 전자부품 공장에서 백혈병, 악성림프종 등 질환에 걸린 노동자 5명에 대해 산업재해 신청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반올림>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앞으로 유해물질이 근로자에게 노출되는 정도를 분석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가 근로자나 유족들에게 전면 공개된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사업장 내 유해물질과 노출되는 정도 등의 자료를 확보할 수 있어 산재 입증이 더욱 수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일 ‘노동자(삼성전자 온양공장)의 이름을 제외한 전체 내용을 공개하라’는 대전고등법원의 판결에 따라 보고서를 공개하기로 했다고 18일 밝혔다. 또 앞으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적극 공개하기 위해 안전보건자료 정보공개 지침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 대전고법 “건강 보호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어”

작업환경측정보고서는 작업장 내 노동자의 유해인자에 대한 노출정도를 평가한 것으로 직업병 피해노동자의 산재 입증에 필요한 자료다. 그동안 정부는 해당 보고서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일부만 공개만 해왔다.

1986년~2014년 삼성전자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이 모씨 유족도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공개를 청구했지만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은 비공개 방침을 내렸다. 결국 유족은 고용노동부와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을 벌여오다 이달 1일 승소 판결을 받았다.

행정심판과 행정소송 1심에서는 “보고서의 측정위치도 등 일부 내용이 삼성전자의 경영·영업상의 비밀”이라며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상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한다”고 판시,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항소심인 대전고법은 노동자 이름을 제외한 전체 자료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대전고법은 “측정위치도가 경영·영업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설령 비밀이라고 해도 ‘위해로부터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전고법 판결 다음날인 이달 2일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은 논평을 내고 “이번 사건은 반도체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가 공개돼야 함을 명시한 한 첫 사례”라며 “또한 보고서의 의의를 설시하고 공개의 범위에 대한 판단을 했다는 점 에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반올림은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는 공장 내부의 유해물질 및 노출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라며 “삼성반도체 직업병 관련 소송에서 법원이 10여 차례에 걸쳐 보고서 제출을 요구했음에도 삼성전자와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 등은 보고서의 전부 혹은 일부의 제출을 거부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는 노동자는 물론 사업장 인근 주민들은 해당 물질에 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으면 질병과 사고에 더욱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번 판결의 취지에 따라 유해화학물질 등 사업장 안전보건자료에 대한 알권리 보장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고용부 김영주 장관은 “향후에도 산재 입증 등에 필요한 정보는 적극적으로 공개해 사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해로 부터 노동자의 생명·건강을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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