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조선시대 때 청소년 윤리 도덕 필독서의 하나였던 <명심보감(明心寶鑑)>은 주로 간화선(看話禪) 수행이 널리 보급되었던 남송 시대를 살면서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삶을 살았던 사대부들의 가르침을 모은 책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은 비단 어린이들뿐만이 아니라 성인(成人)들까지도 뼛속 깊이 새기고 이를 일상(日常)의 삶 속에서 실천에 옮겨야할 요긴한 가르침을 담은 어록(語錄)입니다. 참고로 성심편(省心篇)에 들어있는 보기를 하나 들면 ‘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밑바닥을 볼 수 있으나 사람은 죽어도 속마음을 알지 못한다.[海枯終見底 人死不知心]’라는 가르침처럼 자연은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나 인간들은 죽을 때까지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해득실에 얽혀 서로를, 아니 자신까지도 속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요즈음 각계각층을 불문하고 ‘갑(甲)’들의 횡포에 그동안 짓눌려 지냈던 ‘을(乙)’들의 ‘미투’ 운동은 우리 보통사람들을 매우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먼저 물질 내부 검증의 일환으로 물리학 분야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의 세계를 어떻게 밝히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이에 대응한 역시 엿보기 힘든 인간 내부 검증 주제에 관해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삶과 이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한 바람직한 ‘갑’과 ‘을’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함께 살피고자 합니다.

◇ 원자 내부 탐구

자연과학의 탐구대상으로 물질의 화학적 특성을 유지하는 기본단위인 원자의 내부 세계는, 이미 선행연구를 통해 알파 입자(전기적으로 중성인 헬륨 원자에서 전자 2개를 제거한 입자)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던 러더퍼드가 그의 연구 동료인 가이거 및 대학원생 마르스덴과 함께 수행한 알파 입자 산란실험을 통해 1909년 밝혀졌습니다. 즉, 이들은 얇은 금박(약 금 원자 400개의 두께) 표면에 알파 입자를 충돌시킨 후 그 궤적을 관측한 결과 대부분의 알파 입자는 금박을 그대로 통과하였지만 약 8000개 가운데 1개 비율로 강한 반발력에 의해 어떤 것은 되튕기는 등 진행 경로가 바뀌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결과로부터 이들은 원자 중앙의 아주 작은 영역에 양의 전하로 대전된 매우 무거운 원자핵이 있음을 밝히며 원자 모형을 바르게 제시하였습니다. 덧붙여 러더퍼드는 이것을 ‘지름이 30cm인 대포를 종이에 대고 쏘아 그 포탄이 되튕기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물질적인 원자들은 같은 종류의 원자들, 보기를 들면 금 원자의 경우 모두 늘 그 특성이 같아 전혀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금박을 써서 실험을 하더라도 똑같은 결과를 줍니다.

◇ 인간 내면 탐구

한편 융합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사회적 원자’로 불리기도 하는 인문사회과학의 탐구 대상인 인간 내면은 비록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겉모습은 같다고 하더라도 그 내면 성격까지도 잘 파악하고 있는 생모가 아니면 가까워질 때까지는 한동안 구별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즉,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 다르기 때문에 원자 내부의 탐구처럼 획일적인 방식으로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먼저 국가나 사회, 즉 조직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은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지도자를 총체적으로 잘 식별(識別)할 수 있는 특화된 ‘언행일치’ 검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조직의 흥망과 직결되는 가장 선행해야할 일입니다. 참고로 기업의 특성에 따라 우수신입사원을 선발할 때 비단 자기소개서를 포함한 서류와 면접뿐만이 아니라, 보기를 들면 후보자들의 허를 찔러 면접대기 장소에서 기다리는 동안 후보자들 사이의 배려심을 포함해 드러나는 다양한 태도들의 심층 분석 등을 통해 식별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 갑이 지켜야 할 철칙

그런데 인간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늘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지도자가 선택된 다음에도 공동체 구성원 모두 역시 끊임없는 성찰 노력이 필요합니다. 국가 차원의 보기를 들면 전 세계적으로 독재에 항거하며 투쟁했던 인간들 가운데 적지 않은 분들이 정권을 잡은 후 똑같은 우를 범하다가 망명길에 오르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언론을 통해 접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기업 차원의 보기를 들면 요즈음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몇몇 대기업들의 경우 유기적으로 서로 협력해야할 관련 지도자들의 총체적인 무능으로 인해 대다수의 성실한 직원들과 가족들의 생계 불안뿐만이 아니라 지역 사회, 나아가 국가 경제에까지 그 여파가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택 당시 좋은 평판 속에 능력을 인정받은 지도자 분들인 ‘갑(甲)’은 ‘초심(初心)’, 즉 처음 먹은 마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일상 속에서 늘 자신을 돌아보며 조직 구성원들, 즉 ‘을(乙)’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이 분들의 좋은 의견들도 적극 수용하면서 온몸을 던져 맡은 바 직분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를 위해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있는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언행일치를 위해 갑이 지켜야할 철칙(鐵則)’에 관한 일화를 소개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남송 시대의 법연 선사께서 제자인 불감 스님이 서주 태평사의 주지[지도자]로 부임하게 되어 하직인사를 드리니 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주지가 지켜야할 네 가지 계(戒)’를 일러주셨다고 합니다.

“첫째, 세력을 다 부리지 말라.[第一勢不可使盡]/ 둘째, 복을 지나치게 누리려 하지 말라.[第二福不可受盡]/ 셋째, 규율을 다 시행하려 하지 말라.[第三規矩不可行盡]/ 넷째, 좋은 말을 다 하지 말라.[第四好語不可說盡] 어째서 그러한가? 좋은 말을 모두 다 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이를 쉽게 여길 것이며, 규율을 다 엄격하게 적용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이를 번거롭게 여길 것이고, 만약 복을 다 누리면 반드시 인연이 외로워지게 되며, 세력을 지나치게 다 휘두르면 반드시 재앙이 닥치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요즈음 언론매체를 통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종교계까지를 포함한 지도층 인사들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이 네 가지 계를 소홀히 하다가, 특히 자신도 모르게 ‘갑’의 위치에 도취되어 권위를 내세우며 위력(威力)에 의한 범죄행위를 저지르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들입니다. 그러니 이번 사태를 거울 삶아 우리 모두 충동적으로 행동에 옮기기 전에 지혜롭게 자신을 냉철하게 살펴야 하리라 판단됩니다.

◇ 언행일치 실천방안

한편 최근 필자는 출근길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힌 교통사망사고 예방 캠페인 현수막懸垂幕을 목격하였습니다. ‘사고차량 재생해도 내 목숨은 재생없다.’ 그러자 요즈음 종교계를 포함해 각 분야에서 소위 성공했다는 유명인사들의 치명적인 ‘갑甲’질 기사들이 떠오르며 느낀 짧은 단상斷想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차생(車生)’, 즉 차의 사용 연한은 대파(大破) 사고가 아닌 경우 정비공장에서 수리를 하면 됩니다. 그리고 대파 사고인 경우에는 즉시 폐차(廢車)를 하고 신차(新車)로 바꾸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인생(人生)’은 결정적인 과오(過誤)를 범할 경우 다시는 재기(再起)할 수 없습니다. 오직 남은 생을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준 잘못에 대해 뼛속 깊이 참회하며 살아가야만 하겠지요.

그런데 성인(成人)이 된 이후 이런 과오를 범하지 않고 ‘언행일치’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매우 간단합니다. 대부분의 갑질이 단 둘이 있을 때 일어나기 때문에 비록 단 둘이 있을 때라도 ‘나는 지금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구나.’라고 다짐을 하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배려(配慮)하는 마음을 유지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니 만일 우리 모두 각자 코드가 맞는 자기성찰 방법에 따라 이런 마음자세를 온몸으로 체득하기만 한다면 절대로 망가질 일은 없겠지요! 아울러 여럿이 있을 때에는 마치 혼자 있는 것처럼 행동할 경우, 꼭 필요한 말만 하게 되고 산만하게 잡담할 일들이 줄면서 말실수하는 일도 거의 없게 되겠지요.

덧붙여 요즈음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얼마 전 퇴근길에 동네 사거리에 걸린 ‘문단속!! 하고가면 OK! 그냥가면 KO!’란 문구의 현수막을 목격目擊 하자마자 문단속, 즉 ‘집안단속’이 우리들 ‘내면단속’과 대비되면서 ‘자기 돌아보기!! 날마다 하면 OK! 그냥 막살면 KO!’란 짧은 구절이 떠올랐기에 함께 새기고자 소개를 드렸습니다.

◇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끝으로 이제 겨울이 끝나고 봄으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눈 내리는 겨울철이면 제가 늘 염송하는 서산대사(1520-1604)의 선시(禪詩)를 소개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에도/ 모름지기 어지러이 걸어가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는/ 후일에 필히 다른 사람에게 이정표가 되리니!”[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따라서 만일 우리 모두 이 정신에 따라 있는 그 자리에서 함께 더불어 늘 자기 자신의 자취를 돌아보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꿈과 희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려 애쓴다면 ‘삼독(三毒)’, 즉 탐욕과 분노와 무지를 바탕으로 벌어지는 부정부패의 핵심인 ‘갑질’이라는 조어(造語)는 더 이상 쓸 일이 없겠지요.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전공분야: 입자이론물리학)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한편 1975년 10월 임제종 양기파의 법맥을 이은 선도회 초대 지도법사이셨던 종달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스승이 제시한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이후 지금까지 선도회(2009년 사단법인 선도성찰나눔실천회로 새롭게 발족)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한편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께 두 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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