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등 관계자들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정문 앞에서 옥시 의약품 불매운동 및 시민참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소비자단체가 의약품 사업 재개에 나선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에 다시 나선다. 2016년 2월 ‘가습기살균제 사건’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관련 업체들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난 바 있다. 당시 불매운동은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한 업체와 이를 판매한 업체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판매업체들은 제조업체들의 제품을 매장에서 철수하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문제는 제조업체들이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제조업체들에 대한 국내 철수를 촉구해왔다. 그 중심에는 옥시가 있었다. 옥시 가습기살균제는 제품군별로 볼 때 가장 많은 피해자를 양산했었다. 그러나 최근 옥시가 국내에서 위축된 의약품 사업 살리기에 나섰다는 게 소비자단체들의 주장이다. 또한 옥시가 브래드 명칭에서 ‘옥시’를 빼고 제품을 판매, 소비자들의 혼란을 유발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옥시 측은 올해 1월 의약품 및 헬스케어 사업을 철수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바 있어 향후 불매운동 여파에 관심이 모아진다.

◇ “RB코리아? 이름 바꾼다고 믿을 수 있나요”

옥시는 가습기살균제 사태로 국내에서 생활용품 사업이 고전하자 의약품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옥시 측은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자사의 헬스케어 사업이 확장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옥시는 자사 의약품 브랜드 명칭에 ‘옥시’ 대신 영국 본사의 영문 이니셜만 들어간 ‘RB코리아’를 사용했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옥시는 생활용품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옥시 의약품들은 한 때 연간 100억원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이에 약사들을 중심으로 옥시 의약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전개됐다. 약국에 옥시 의약품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게시한 것. 의약품 불매운동은 생활용품 불매운동보단 대중적 홍보 효과가 크진 않았지만 옥시의 실적 면에선 막대한 타격을 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해 초 옥시 측은 약사회를 찾아 자사 의약품을 팔아달라며 호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한국 철수설을 부인하며 오히려 국내 시장 헬스케어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결국 지난 17일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가피모)과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 한국여성소비자연합회 등은 옥시 사무실이 있는 서울 여의도 IFC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옥시 의약품 불매운동을 선언했다.

이들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 “옥시는 배상 책임을 축소하고 시간을 끄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지치게 하고 있다”면서 “더욱이 무고한 시민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평생 산소통을 안고 살도록 만들고서 뻔뻔하게 의약품 사업 재개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옥시가 아닌 RB코리아로 제품들이 소개되면서 소비자의 혼란을 유발하고 있다”면서 “아직도 온갖 꼼수를 일삼는 옥시에 대해 전국 약사와 약국에 다시 한 번 불매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가습기사망사건과 관련 옥시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되던 2016년 4월 28일 서울 마포구 한 약국에서 '옥시 불매운동 동참으로 옥시제품을 판매하지 않고 있다'는 문구가 게시돼 있다. <뉴시스>

◇ 옥시, 다시 부는 불매 바람 버틸 수 있을까

또 다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의약품 불매운동이 시작되면서 옥시의 의약품 사업이 빨간불이 켜졌다. 실제로 옥시는 약국의 불매운동 여파로 지난해 일반의약품 매출이 반 토막이 난 것으로 확인됐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 기준 옥시의 위역류치료제 개비스콘의 지난해 매출은 2016년 대비 23% 하락한 38억원이다. 개비스콘은 한때 연간 100억원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다 2015년 80억5,000만원에서 2016년 49억7,000만원으로 매년 감소 추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인후염 완화제 스트렙실도 2015년 70억3,000만원에서 2016년 51억2,000만원, 지난해 36억6,000만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여기에 가피모와 가습기넷, 참여연대 등은 곧 발족할 ‘사회적참사 특조위’ 활동과 발맞춰 옥시 불매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과거 불매운동 당시 백화점과 대형마트, SSM, 일반쇼퍼마켓 등 오프라인 중심의 방식에서 벗어나 올해는 티몬과 옥션 등 온라인 업체들에 대해서도 의견표명을 요구할 계획이다.

김순복 한국여성소비자연합회 사무처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옥시 불매운동은 2016년부터 쭉 진행해왔지만 의약품은 지난해 초와 올해는 이달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이라며 “약국의 동참으로 실제 옥시 의약품 매출이 반토막이 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소비자들이 옥시가 어떤 의약품을 만드는지 모르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개비스콘이나 스트렙실 같은 경우는 TV광고에서 워낙 많이 나오면서 그나마 조금 알려지긴 했지만, 그 외에도 옥시에서 콘돔이나 손세정제 등 다양한 제품들을 만들고 있다”면서 “더욱이 올해부턴 약사회도 직접 찾아가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이 예상되는 만큼 불매운동도 다시 알리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소비자단체들은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 차원에서 앞으로도 계속 가습기살균제 관련 업체 불매운동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사무처장은 “피해자들은 가해 기업에게 사회적, 도의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고 소비자단체 역시 마찬가지다”면서 “하지만 불매운동은 소비자의 알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진행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