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 전원합의체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착석해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5차례 재판 끝에 결국 유죄가 확정됐다. 19일 오후 2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직선법과 국가정보원법 위반으로 기소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16년 6월 기소된 지 약 4년10개월 만의 결론이다.

원 전 원장 재판의 핵심은 선거법과 국정원법 모두가 유죄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1심부터 대법원까지 각 심급별로 이에 대한 결론이 달랐기 때문이다. 더욱이 1심과 2심, 대법원, 파기환송심 등 4차례의 재판 중 오직 대법원만 판단을 유보, 정치적 논란으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그러나 5차례 재판을 자초한 대법원은 결국 스스로 내린 판단을 거두고 두 혐의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 1심: “정치 관여는 했지만 선거법 위반은 아니다”
   2심: 425지논·시큐리티 파일 증거인정... “선거법 위반”

원 전 원장은 2009년 2월부터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과 관련한 여론전을 지시하고(국정원법 위반), 2012년 총선과 대선 등 각종 선거과정에 특정 후보에 대한 기사에 지지 또는 반대 댓글을 달게 한 혐의(선거법 위반)로 기소됐다. 그러나 사건을 다룬 재판부는 각각 다른 판단을 내놨다.

2014년 9월11일 1심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국정원법을 위반했다면서도 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봤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는 “국정원 직원들에게 정치 관여 활동을 지시한 행위는 자유로운 여론 형성 과정에 국가기관이 개입하는 행위”라며 “이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원 전 원장의 ‘전부서장 회의’ 발언상 명시적으로 선거운동의 지시라고 볼만한 내용이나 계획적, 능동적,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정황도 없다”면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낙선 목적의 선거운동을 했다고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와 달리 2015년 2월 9일 2심 재판부는 시기별로 선거법 위반 여부를 판단했다. 즉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2012년 8월 20일을 기점으로 이후의 사이버 활동 대부분을 선거운동으로 봤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증거를 채택하지 않았던 ‘425지논’, ‘시큐리티’ 파일을 증거로 채택, 이를 국정원 직원이 작성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를 통해 재판부는 국정원이 ‘선거개입의 목적을 가지고’ 선거운동을 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원 전 원장은 이날 항소심 판결이 끝나자마자 법정구속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일 오후 2시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뉴시스>

◇ 대법원: 425지논·시큐리티 또 발목... “판단 유보”

반면 2015년 7월16일 대법원은 원 전 원장에 대해 사실관계의 추가 확정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항소심에서 증거능력을 인정한 ‘425지논’, ‘시큐리티’ 파일에 대해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것. 대법원은 그 이유로 “425지논, 시큐리티 파일 상당 부분은 출처를 알기 어려운 단편적이고 조악한 형태의 기사 일부분과 트윗글 등”이라며 “이들 파일이 어떻게 활용됐는지도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종 판단을 내리기 위해선 사실심 단계에서 사실관계가 충분히 확정돼야 한다”면서 “425지논, 시큐리티 파일의 증거능력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심 판단의 적법성을 따질 수 없다”고 밝혔다. 양승태 대법관 시절 대법원은 당시 13명 만장일치 의견으로 이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당시 대법원이 유무죄 여부에 대해 판단을 하진 않았지만, 유죄 판결을 내린 항소심을 파기했다는 점에서 ‘정권 눈치보기’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지난 1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한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관련 각계 동향’이라는 문건을 공개하면서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해당 문건과 관련된 의혹을 조사 중이다.

◇ 파기환송심: “425지논·시큐리티 없어도 선거법 위반”
   대법원: “원세훈, 조직 정점에서 대선 개입 지시”

파기환송심은 대법원이 사건을 돌려보낸지 2년여 만에 열렸다.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원 전 원장에게 기울어진 판세는 2017년 8월30일 파기환송심 선고 후 완전히 바뀌었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대웅)는 원 전 원장의 파기환송심에서 국정원법은 물론 선거법도 위반도 유죄로 인정, 원 전 원장은 또 다시 법정구속됐다.

특히 파기환송심은 선거법 위반을 판단함에 가장 쟁점이 됐던 425지논·시큐리티의 증거능력을 부정했음에도 선거법 위반을 인정했다.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이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은 부서장 회의에서 수차례 ‘야당이 승리하면 국정원이 없어진다’는 말까지 했고, 평상시에도 여당 승리를 목표로 대책 수립 및 활동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방하는 사이버 활동을 통해 국정원법에서 금지하는 정치관여를 하고, 야당 후보자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다”고 판단했다. 통상 파기환송심은 대법원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어, 원 전 원장의 재구속은 예측하기 쉽지 않았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각 심급별 판결 내용. <시사위크>

한편 원 전 원장의 마지막 판결을 선고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파기환송심에서 내린 징역 4년형을 최종 확정했다. 대법원은 파기환송심의 판결 취지와 같이 425지논·시큐리티 파일을 배제하고 법리 판단을 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사이버활동은 국가권력기관인 국정원의 예산과 활동역량을 바탕으로 공무원인 직원들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수행한 것”이라며 “엄격한 상명하복을 기반으로 한 조직 특성상 국정원의 불법 사이버활동은 ‘직원의 일탈행위’가 아니고, ‘정점’인 원 전 원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