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함으로서 한반도 정세가 다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 상황에 처하게 됐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각)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펜스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미국이 인내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마음이 바뀌면 망설이지 말고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써 달라”거나 “언젠가 만나기를 고대한다”며 여전히 북미정상회담의 가능성은 열어놓은 상황이다.

싱가포르 회담 취소를 발표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가능성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의 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거나, 나중에 열리는 것이 가능하다”며 “북한이 그런 기회를 잡을 것인지 두고 볼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북미정상회담 ‘취소’라기 보다는 ‘연기’라는 뉘앙스에 가깝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조건들이 맞지 않으면 열리지 않을 수 있다”며 연기 가능성을 언급했었다.

◇ 북한의 오판, 전통적 ‘벼랑 끝 전술’ 역풍

당혹스러운 것은 그 결정이 매우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데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뒤 다음 주까지 성사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싱가포르 회담 취소를 결정하고 즉각적으로 발표해버렸다. 미국 NBC 방송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취소와 관련해 오전 7~9시 사이 참모들과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주고받았으며 취소발표 시각은 오전 9시 43분이었다. 취소결정 과정이 짧고 빠르게 이뤄졌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담화가 지목됐다. 펜스 부통령까지 비난대상에 올리면서 역린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반응이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를 부정적으로 예측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이밖에도 백악관 관계자에 따르면, 북측은 싱가포르 실무접촉에도 이유 없이 불참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은 북한의 이 같은 태도변화 배후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김계관 제1부상이나 최선희 부상의 담화, 남북고위급 회담 무기한 연기, 북미 실무접촉 회피 등 북한의 일련의 행동은 사실 ‘외교술’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과거부터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을 앞두고 핵실험을 하는 등 이른바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해왔다. 이번 역시도 협상을 깨자는 의도라기 보다는 미국을 상대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북한의 전통적 방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 ‘미치광이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기술

'북미회담 무산시킨 트럼프 규탄 기자회견' 에서 한 대학생이 트럼프 미 대통령의 얼굴사진을 찢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북한이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파악해 오판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 정치인 논법으로 설명이 어려운 트럼프 대통령을 ‘올드’한 방식으로 상대했다는 것이다. 이번 북미정상회담 성사과정을 봐도 정의용 안보실장의 브리핑을 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적으로 수용하면서 이뤄졌었다. 과거 미국 지도자들이었다면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든지 판을 깰 수 있을 것이라는 점도 감안했어야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치광이 전략’이라고 표현됐던 게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방식이다.

이날 tbs라디오에 출연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측이) 이번에 너무 자신감에 찼던 것 같다. ‘벼랑 끝 전술’이 그동안 미국에 쭉 통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통할 수 있겠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권에서 된 사람이 아니고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외계인 비슷한 대통령이다. 특히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확인하고 그 다음 회담을 취소한 것을 보면 북한 못지않게 더 강력한 벼랑 끝 전술을 쓰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 과거와 같은 뜨뜨미지근한 단계적 비핵화 협상안은 정치적으로 이익이 크지 않다. 이미 미국 주류언론들은 북미정상회담에 관해 부정적인 관측을 쏟아내고 있었다. ‘성공하기 어렵고, 실패하더라도 성공처럼 포장될 것’이라는 게 주요 논지다. 반전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전격적인 CVID 타결이 필요하고, 그게 아니고서는 협상에 굳이 임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한미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일괄타결이 바람직하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짧은 시간에 거래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했었다.

이와 관련 엘리엇 아브람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미국외교협회 기고글을 통해 “북한과 협상을 해 본 사람이라면 북한의 지난 며칠 행보가 놀랍지 않다. 오히려 미국의 정책이 과거 여러 행정부들보다 강경하고 현실적이라는 점이야말로 놀랍다”며 “빠른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꿈은 끝났지만, 미국의 입장은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더 분별력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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