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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의 문예노트] 대마도에서 비운의 덕혜공주를 만나다

기사승인 2017.03.20  15:5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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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도겸의 대마도 기행 2

   
▲ 하도겸 칼럼니스트
2016년 일본으로 끌려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The Last Princess)가 손예진의 뛰어난 연기로 얼마 전 우리에게 돌아왔다. 2009년 작가 권비영의 소설을 원작으로 각본화한 영화 속의 조선의 마지막 덕혜옹주(1912년 5월 25일 ~ 1989년 4월 21일)와 그녀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560만을 넘는 관객을 동원하여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역사 왜곡이라는 지탄도 받았다.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사실은 이 영화가 팩트가 아닌 그냥 허구적 소설의 한 형태인 ‘사극’을 영화화한 것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굳이 역사왜곡이라고 지적할 것이 아니라 이 영화가 우리에게 메시지, 즉 우리에게 새롭게 ‘나라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조선왕조 고종황제와 복녕당(福寧堂) 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옹주는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25년 일제에 의하여 볼모로 일본에 끌려갔다. 어린 나리에 외로움과 향수병으로 정신질환인 조발성(早發性) 치매증까지 얻게 되었으니, 불쌍하기 그지없다.

   
▲ 사진은 대마도 가네다성에서 본 해안선의 모습이다. 2001년 하도겸 촬영.
1931년 대마도(對馬島) 번주(藩主)의 아들이자, 당시 동경제대 영문과를 나온 미남으로도 유명했던 소다케시[宗武志] 백작과 강제로 정략결혼까지 하게 된다. 사랑해서 결혼했는지 모르지만 결국 사랑받지 못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패전 후 백작 작위를 상실하고 대학교수를 지냈던 소다케시는 1955년 덕혜옹주와 결별 후 일본 여인과 재혼한다. 현재도 둘 사이에 출생한 후손들은 동경 부근 치바현 가시와시에서 거주한다고 전한다. 그렇게 1955년은 덕혜옹주에게는 매우 힘든 시기였다. 전남편의 재혼과 함께 전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딸 소마사에[宗正惠]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고종의 외손녀라고 할 수 있는 마사에는 와세다 대학 동문인 스즈키 노보루(鈴木昇)와 결혼했으나 그녀 역시 1년 만에 파경을 맞고 그 해 실종된 것이다.

병원을 전전하던 그녀는 1961년 영친왕(英親王)의 부인인 비운의 일본인 이방자(李方子) 여사의 호의로 희망을 갖게 된다. 이방자 여사를 만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협조로 1962년에 귀국할 수 있게 도운 것이다. 그러나 귀국 후에도 지병은 호전되지 않았으며, 창경궁(昌慶宮) 낙선재(樂善齋) 주변 수강재(壽康齋)에 칩거하다가 결국 1989년에 별세하였다. 이어 10일만에 비운의 왕비 이방자 여사도 세상을 버리며 비극의 두 여주인공은 역사의 장에서 사라졌다.

다행히 옹주는 고종 광무제와 명성황후 민씨의 홍릉(洪陵)과 순종 융희제와 순명효황후 민씨와 순정효황후 윤씨의 유릉(裕陵)이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홍유릉(洪裕陵)에 안장되며 사후에나마 다시 부모형제와 재회할 수 있었다.

   
▲ 사진은 대마도 가네다성에서 본 해안선의 모습이다. 2001년 하도겸 촬영
일제가 낳은 우리 황실의 최대 피해자였던 조선인 덕혜옹주가 결혼했을 때 멋모르고 가장 기뻐했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당시 쓰시마에 거주했던 우리 한국인들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옹주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염원했다. 그래서 세운 이왕가종가백작어결혼봉축개념비(李王家宗家伯爵御結婚奉祝記念碑)가 이즈하라 가네이시성(金石城)에 아직도 남아, 우리에게 슬픈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대마도는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 고려와 조선의 영토이기도 했다. 일본인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1785년에 작성한 『삼국통람도설』 가운데 삼국접양지도에도 대마도는 조선 영토로 기입되어 있다. 우리 부산에서 배로 1시간 10분만에 갈 수 있는 대마도를 우리는 고려시대 이래도 적어도 세 번 이상 정벌한 적이 있다. 영토는 현재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나라의 영토로, 언제든 주인이 바뀔 수 있다. 거꾸로 대마도가 영원히 일본의 땅이라는 것이 더욱 우스꽝스러운 상상이 될 것 같다.

일본인보다 더 많은 한국인이 찾는 대마도에서 언젠가 덕혜옹주의 한을 푸는 남도무악의 하나인 ‘살풀이’를 보고 싶다. 조선국 마지막 옹주가 엄격한 규격이 있으면서도 속박이 없고 춤의 자태가 선명하며, 발 디딤새가 어려워도 자연스럽고 단정하고 깔끔한 우리 민속춤인 살풀이를 따라 춤추는 것을 보고 싶다. 흥겹게 춤을 추며 희노애락의 한을 넘어 새로운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했으면 하는 염원이다.

시사위크 sisaweek@sisaweek.com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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