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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의 문예노트] 부산에서 배로 한시간만에 가는 대마도

기사승인 2017.04.24  12: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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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도겸의 대마도 기행 3

   
▲ 하도겸 칼럼니스트
드디어 세 번째 대마도 기행에 나섰다. 몇 달전부터 준비를 하려고 ‘부산’스럽게 설쳤다. 하지만 실제로는 글도 2개밖에 못쓰고 나선 기행이 되어 버렸다. 스스로 준비가 부족했으니, 큰 기대 자체가 욕심이니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바쁜 일정 가운데 작은 여유라도 찾기 위해 아주 짧게 주말에 1박2일로 대마도에 다녀왔다. 밤 비행기나 배편이라도 있었으면 1박3일도 갈 요량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교통편이 받쳐주지 않았다.

토요일 새벽 5시15분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첫차 KTX101편에 몸을 실었다. 새벽 서울역은 부산스럽지 않고 한가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기차편에 빈자리들은 알 수 없는 여유를 선물해줬다. 그런 여유를 즐길 시간도 없이 쏟아지는 졸음에 눈을 부친다. 잠시 눈을 감았을 뿐인데 눈을 떠보니 역은 이미 신경주를 떠나 부산을 향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번 여행에 동행한 분들도 몇 분 계셨다. 하지만 꿈나라에서는 알 수 없었다. 눈에 들어와야 그제야 아는 인간의 한계는 포식자와 적의 위험이 상시 도사리는 유목사회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던 사치가 아니었을까?

   
▲ 부산항에 정박중인 비틀호 <하도겸 칼럼니스트>
7시51분에 도착해서 개찰구를 벗어나 매표소광장으로 향했다. 노란색으로 9번출구 표지판에는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을 가리키고 있었다. 2층에서 내려와 횡단보도를 건너니 바로 터미널로 향하는 순환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승차 3분만에 현해탄 바다가 보이는 터미널 출발장에 도착하고 우리 일행을 기다리는 가이드와 만났다. 5분도 안걸려 짐검사와 출국심사가 끝나고 선착장에는 이미 우리를 대마도로 데려가 줄 비틀호가 정박해 있었다.

비틀호라는 게 일본 JR 큐슈의 쾌속선인 듯하다. 승무원 거의 대부분이 일본인들로 보이는데 짤막한 한국어가 된다. 일본을 신뢰하는 우리 한국인이 13%도 안되게 곤두박질하고 있다. 가까이 있어서 더욱 얄미운 일본이지만 사드문제를 통해 요즘 국제정세를 보면 중국은 참으로 위협적이다. 중국와 북핵 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일본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니 극우적인 아베와의 전략적인 협력을 해야 하는 우리 처지가 아쉽기만 하다.

   
▲ 부산항에 정박중인 비틀호
사람들은 언젠가 모두가 죽는다. 나이들어 눈을 못뜨면 저세상이다. 그래선지 몇몇 어른들은 죽으면 충분히 잘 수 있다며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즐기기도 한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아니면 배멀미를 하는 것인지 배는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다시 눈을 감은 채 대마도로 마음은 나래를 펴고 날아가고 있었다.

배가 바다 위를 부상해서 거의 날아가다시피 한다고 할 정도로 너무 빨라서 밖으로 전혀 나갈 수 없었던 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일 듯하다. 바다를 직접 못보고 유리창을 통해 봐야 해서 많이 안타까웠고 그럴 바에야 잠이나 자자는 생각이 이긴 듯하다. 여행에서는 안전과 건강이 최고인지라 불만은 없이 눈을 지긋이 감는다. 몽중일여나 오매일여 아니 시간여행이란 것이 이런 것인가? 또 잠시 눈을 떠보니 이미 배는 히타카츠에 도착하고 있었다.

대마도는 이번이 세 번째인 듯 하다. 지금까지는 한번은 일본 후쿠오카항에서 배를 타고 잇키섬을 경유해서 대마도로 넘어 갔었던 것 같다. 또 한번은 후꾸오카에서 ANA인가 전일본공수라는 항공사 비행기로 갔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우리 부산에서 배로 대마도로 가는 것은 처음이 된다. 예전에는 김포공항에서 곧장 대마도로 가는 경비행기가 있었다는데 갑자기 검색이 안된다. 대마도를 가고 싶은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얼른 다시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 대마도 히타카츠항 국제여객터미널 <하도겸 칼럼니스트>
히타카츠항 여객터미널은 참 작은 곳이었다. 배 하나 도착할 때 마다 탑승객들이 줄을 열겹이상 서서 수속 다 밟고 입국할 즈음에 또 다른 배가 도착하는 그런 시스템 같았다. 정말 오랫동안 줄 서 있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금방 수속을 마치고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본에 들어가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나라였다. 대마도 정도는 무소속이나 통관절차의 간소화, 특히 사진촬영 및 지문날인 정도는 생략해도 좋을텐데 좀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도로 및 지명 표시에도 식당 메뉴에도 온통 한글이 병기되어 있었고, 길가다 만난 사람들은 주말이어서 그런지 대부분 한국인들이었다. 우리나라가 대마도를 먹여살린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쏟아부어주는데 대마도 정도는 수속을 간소화하는 게 맞을 듯 싶다. 실제로 같은 항구에서 출국할 때는 정말 3분에 안걸리게 빠르게 진행된 것을 보면 불가능할 일도 아닌 듯 싶다. 그런데 이즈하라와 하카타츠 두군데 일본 법무성 소속의 출입국관리국이 설치되어 있고 수속창구도 6개가 넘게 된 것도 불과 7년전이라고 하니, 우리 외교부와 부산광역시가 좀 더 신경쓰고 애쓰다보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외교부나 부산시가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는 좀 궁금해진다.

여행갈 때 준비할 게 많은데 항상 ‘여보’만은 잘 챙겨야 한다고 한다. ‘여권과 보따리’라고 하는데, 그 보따리는 돈 보따리인 지갑인가? 제 경우는 사진가방 같았다. 여권도 여비도 모두 그 안에 넣어 두고 움직인다. 하지만 가방 안에 꼭 감춰 두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다. 마음이다. 마음은 언제나 자연과 사람 그리고 그 모두와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날은 대마도 전체를 품을 수 있도록 부풀어지기도 하는데 대마도를 찾은 우리나라 사람들 마음이 다 그럴 듯 싶다.

   
▲ 오양 선생의 ‘심시천’
1973년 개천절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건립기는 이은상(李殷相)이 기문(記文)을 짓고 하정 오양(吳養)이 대자(大字)를 쓰고 여초 김응현(全膺顯)이 소자(小字)를 썼다. 시조시인 이은상의 작문을 쓰는데 당시 동방연서회 이사장을 역임한 우리나라 최고의 서예가 가운데 한 분인 ‘처음처럼’의 여초(如初)선생이 큰 글씨 글자인 ‘대자’를 양보해야했던 하정(夏丁) 오양선생이란 유림을 가르쳤던 서예와 한문의 대가가 계셨다.

동성회(同聲會)라고 해서 당대 기라성 같은 시인 27인 가운데 한분인 하정 선생이 ‘액자’로 가끔 쓰시던 글 ‘심시천(心是天)’이란 말이 있다. 마음이 곧 하늘이라는 뜻인데, 동학이나 천도교에서 말하는 “자기 마음을 깨달으면 몸이 바로 하늘이고 마음 역시 곧 하늘”이라고 했다. “마음 밖에 하늘 없고 하늘 밖에 마음없다”고도 했으니, 사람의 마음이 곧 하늘의 마음이라고도 했다. 인내천 사상을 달리 표현한 것으로 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깨달은 사람 또는 깨친 사람이라고 했다. 깨치지 않았더라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대마도를 찾는 것은 어떨까? 내 맘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의 마음을 하늘로 여기는 그런 마음 말이다.
 

시사위크 sisaweek@sisa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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