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들은 보수가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공주의 등 박정희 패러다임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 새 보수의 가치와 철학을 정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달 3월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후 검찰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뉴시스>

 

[시사위크=신영호 기자] ‘보수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위기를 맞았다.’

예나 지금이나 보수의 위기를 진단할 때 나오는 얘기다. 남북분단이 낳은 냉전식 사고에 기댄 채 기득권만을 지킨 수구보수라는 규정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 보수는 어떤 가치를 지킬 것인지, 그리고 시대변화에 따라 그 내용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성찰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이제는 진부하게 들린다. 남의 잘못으로 반사이익을 얻는 적대적 공생을 통해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는 쓴소리도 토씨 한 자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그래서 ‘한국에는 보수라고 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는 논리구조가 하나의 가설을 넘어 상식이 된지 오래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17일 “한국 보수는 반공주의에 입각한 보수다. 그런 보수는 시대에 맞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현재의 보수 세력은 과거 정통성 없는 정권을 지탱했던 그 보수에 머물러 있어 엄밀히 말하면 보수라고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최창렬 교수 말대로라면, 한국 보수는 획일적 국가주의 등 군사정권 때의 사고방식에 젖어 변화보다는 적당한 눈속임과 얼굴화장을 통해 권력의 단맛을 누려온 것이다. 지방선거, 국회의원 총선, 대통령 선거에서 지더라도 그때그때마다 땜질 처방을 통해 위기 상황을 회피했다.

이랬던 보수가 전에 겪지 못한 상황을 맞았다. 보수의 상징으로까지 불린 박근혜 정부가 선거가 아닌 촛불민심에 의해 퇴출됐다. 그 여파로 보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갈라섰고, 대선에서 이렇다 할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정권을 내줬다. 박근혜 탄핵으로 시작된 보수의 위기를 수습할 새 리더도 보이지 않고 있다. 위기의 질적 내용이 과거와 달라진 것이다.

◇ 북한과도 대화하는 시대정신 필요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역사를 세운 게 대한민국의 보수세력이었다”라면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인해 보수가 분열되고 궤멸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썼다. 보수 역사상 지금이 최대 위기라고 본 것이다. 김무성 의원은 “국민들의 눈에는 기존 정치질서를 옹호하는 집권세력의 상황적 보수주의 즉 철학 없는 보신주의로 비춰진 측면이 강했다”며 “보수라고 얘기하면서 가진 사람이 더 가지려고 하는 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그렇다면 지금의 보수가 근본적 성찰에 이은 과감한 개혁을 할 수 있겠냐고 다시 묻는다.

최창렬 교수는 “(보수 혁신)해법이라는 것이 별 다른 것이 있겠느냐. 시대에 맞게 인식을 바꿔나가면 되는 것이다. 북한과도 대화할 생각을 하는 등 국익이 무엇인지 냉정히 바라보고 시대정신에 맞게 변하면 된다

전계완 시사평론가는 “획일주의 경쟁주의 국가주의 등 박정희 패러다임을 극복하는 정도로는 안 되고 보수가 새로 태어날 수 있는 새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정치 경제 안보 등 우리 사회 주요 의제를 어떻게 바라볼 건지 이에 대한 보수적 가치와 철학이 담긴 항로가 재설정되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이뤄져야 보수 혁신의 새 길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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