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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의 문예노트]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 아내의 질투에 대한 옐로카드

기사승인 2017.06.19  10:4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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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도겸 칼럼니스트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있는 만덕산은 동백림으로 유명하다. 백련사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동백림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는 절경 가운데 절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도 ‘남도답사 1번지’ 가운데 하나로서 1801년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유배 생활을 하던 정약용(丁若鏞 : 1762~1836)이 거닐던 곳이기에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이 만덕산 기슭에는 오래된 차나무라는 뜻의 고차수가 참으로 많다. 동백나무가 바다를 건너 운남으로 가면 보이차나무가 된다. 중국의 3대 하천 가운데 하나인 회수(淮水)를 제주와 한반도 육지부 사이의 바다로 간주하면서, ‘귤화위지(橘化爲枳)’, 곧 ‘귤이 회수를 넘어서 북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라는 말처럼 중국과 우리의 토양과 기후는 많이 다른가보다.

만덕산에 보이차나무는 없고 동백나무만 가득 찼지만 그 위로는 녹차를 만들 수 있는 소엽종의 차나무가 많이 분포하고 있다. 그래서 만덕산을 차나무가 많은 산이라는 뜻의 다산(茶山)이라고도 불렀을까?

서간문을 보면 초의선사에게 차를 자주 청할 정도로 차를 좋아했던 정약용은 호를 다산이라고 불렀던 것도 이 산과 무관하지 않다. 봄에 난 찻잎을 따는 것을 좋아해서 채산(菜山)이라는 호도 만들었던 정약용은 1808년부터 지금은 와당이 된 초당으로 처소를 옮겨 1818년 귀양에서 풀릴 때까지 10여 년간 생활한다. 그곳이 바로 ‘다산초당’이다.

   
▲ 다산초당 <문화재청 제공>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西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한 정약용은 초당에 머물면서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一表二書: 경세유표 經世遺表· 목민심서 牧民心書·흠흠신서 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권을 넘는 방대한 저술을 정리하여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를 편찬했다.

정약용의 유배생활로 생이별을 하던 다산의 부인 홍혜완은 혼인 때 입었던 치마를 정약용 선생에게 보냈다. 예부터 오래된 비단 치마 등은 물품이 귀하던 시절 시서화 작품의 캔버스로 자주 사용되었다. 오원 장승업이 기생치마에 그려준 것은 그런 사회적인 상식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쓰레기’를 주제로 하는 특별전에서도 ‘비단치마의 문화예술 작품문화재로서의 화려한 부활’이라는 소재로 등장할지 모르겠다.

혼인 때 입었던 치마는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는 속설도 있다. 당시 소실을 얻어 홍임이라는 딸까지 얻은 다산을 원망하면서 ‘첫사랑’이나 ‘조강지처’를 잊지 말라는 뜻으로 보낸 정실의 질투의 상징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런 뜻을 알면서도 ‘가정의 평화’를 생각한 속 넓은 남자 다산선생은 노을 빛 치마(하피 : 霞帔)라는 붙인 서첩 하피첩보물 제1683-2호 네권을 만들어 아들에게 전하고 결혼한 딸에게는 매화병제도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를 만들어 보낸다. 남편의 소실을 질투하지 말고 자녀들의 ‘현모’가 되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 아니었을까? 결국 귀양 후 서울에서 내침을 당한 홍임모녀의 사연이 ‘남당사(南塘詞)‘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다면 참으로 금슬좋은 부부의 왕래였다고 보였을 것이다.

   
▲ 하피첩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하피첩 서문에서 “내가 강진에서 귀양살이 할 때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보내왔는데, 시집올 때 가져온 예복으로 붉은빛은 흐려지고 노란빛은 옅어져 글씨 쓰는 바탕으로 알맞았다. 이것을 잘라서 조그만 서첩을 만들어 손 가는 대로 훈계하는 말을 써서 두 아이에게 남긴다. 아이들이 훗날 이 글을 보고 감회를 일으켜 부모의 흔적과 손때를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그리는 감정이 뭉클하게 일어날 것이다”라고 이 서첩을 만들게 된 경위를 밝혔다.

늙고 병든 아내가 유배생활을 도와준 ‘소실’을 질투한 것을 경계하며, 아이에 대한 훈계를 통해 이를 읽어볼 아내에게도 뜻을 전한 것은 아닐까? 예복을 가위로 자른 것 자체가 딸까지 시집보낸 부인에게 이제 나이도 생각해서 남녀간의 ‘애욕’의 경계를 끊고 자식들의 훈육에 더욱 힘쓰라는 간곡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역(周易) 문언전(文言傳)에 <경이직내 의이방외敬以直內 義以方外>란 구절이 나온다. 줄여서 경직의방(敬直義方)이라고도 하는데 “공경하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내면을 바르게 하고 정의로운 행동으로 자신의 행동을 반듯하게 해야 한다”는 말로 해석되곤 한다. 줄여서 “경으로 마음을 잡고 의로 일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주역 속에서의 이야기일 따름이다. 하피첩에 적힌 ‘경직의방’은 다산의 풍부한 지식과 놀라운 임기웅변을 생각한다면 단지 “감사해야 할 일과 올바른 일은 직방 즉 지체없이 주저없이 곧바로 하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앞으로는 아버지남편에게 감사하고 가르친 일은 반성하고 바로 고치라”는 늙은 아내와 장성한 아이들을 경계하는 최고의 메시지였다고 보면 어떨까?
 

시사위크 sisaweek@sisaweek.com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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