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의 어디에 도장을 찍을지 결정하는것은 유권자 본인이 아닐수도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투표용지 위에서 1번과 2번, 가결과 부결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외부인이 내놓은 정보가 투표자의 선호와 사전지식보다 영향력이 크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한국은행은 27일 정대영 미시제도연구실 부연구위원이 발표한 ‘전문가의 전략적 정보 전달이 의사결정자의 의견 형성에 미치는 영향’ 연구를 요약·소개했다. 정대영 연구위원은 “의사결정자가 정보 수집을 위해 외부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지만, 이해관계의 차이 때문에 그들의 조언은 전략적으로 해석돼야 한다”고 연구 방향을 밝혔다.

연구는 특정 효용함수를 가지는 의사결정자가 외부전문가의 조언에 반응해 투표사안에 찬성 혹은 반대를 결정하는 과정을 모델화해 진행됐다. 외부전문가의 선호체계와 가결 기준, 의사결정자가 판단한 외부전문가의 성향이 변수로 선정됐다. 의사결정자 개개인의 선호는 공개되며 외부전문가는 의사결정집단에 대해 상당한 정보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했다.

연구 결과 정보제공자가 편향된 선호를 가지고 있다면 한 쪽으로 치우친 정보를 제공해 투표를 부결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대영 연구위원은 송유관 건설법안 가부 투표를 예시로 들었다. 의사결정집단을 일자리 선호자와 환경보호주의자, 중립의견자로 분류한다면 부결을 원하는 외부전문가는 “송유관 건설이 경제성장에는 도움이 되지만 환경에는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말함으로서 최소 1/3의 반대표를 유도할 수 있다. 의사결정자의 선호에 따라 의견을 양극화시켜 가결에 필요한 표가 모이지 못하게 하는 전략이다. 의사결정이 만장일치로 이뤄진다면 안건은 100% 부결된다.

사회 전체의 후생극대화를 추구하는 외부전문가도 있다. 이때는 의사결정집단을 양극화하는 정보가 아니라 하나로 모으는 정보가 제공된다. 위의 예시에서는 “송유관 건설이 경제와 환경에 모두 나쁘다”는 정보에 동조하는 구성원들이 나서 안건을 부결시킨다. 이 경우 의사결정이 만장일치가 아니라 다수결로 결정될 때 외부전문가의 영향력이 커진다.

외부전문가가 제공한 정보는 다양한 의사결정집단의 의견을 하나 혹은 둘로 축약시키는 기능이 있다는 결론이다. 의견다양성이 줄면 외부전문가의 선호가 개입될 여지가 커진다. 정대영 연구위원은 “정보우위에 있는 외부자의 전략이 의사결정자의 성향과 최종결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이번 연구의 의의를 밝혔다.

연구보고서는 선호왜곡효과를 방지하기 위한 조언으로 마무리됐다. 먼저 의사결정집단 스스로가 개인 선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전문가적 지식과 식견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대영 연구위원은 해당분야의 전문가들로 이뤄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를 모범사례로 제시하면서 “전문지식이 중시되는 조직은 외부자의 편견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외부 자문기관 선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당부도 이어졌다. 일례로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에서 조언을 구하는 경우, 외부전문가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전략적 조언을 할 가능성이 있음을 항상 주지해야 한다. 정대영 연구위원은 “법학에 무지한 배심원단은 숙련된 변호사에게 금세 넘어가기 마련이다”며 의사결정그룹이 비판적인 시선으로 외부 이익집단을 바라봐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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