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케어'의 상원 통과 무산에 트럼프 대통령이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 CNN 홈페이지>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안, 속칭 ‘트럼프케어’에 사실상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민주당의 반대가 완강한 가운데 지난 18일(현지시각)에는 공화당 의원 두 명이 반대의사를 밝히면서 상원 통과가 어려워졌다.

트럼프케어는 ‘오바마케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환자보호 및 부담적정보험법’을 대체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건강보험 개혁안이다. 오바마케어가 명시한 전 국민의 건강보험 가입 의무화와 저소득층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삭제하고 대신 연령에 따른 세액공제를 도입한 것이 트럼프케어의 핵심이다. 트럼프케어는 지난 5월 미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에서는 현재까지 네 명의 공화당 의원들이 반대에 나서면서 과반 확보가 불가능해졌다.

◇ 대통령 권위 약화에... 들끓는 정치·경제적 위기론

그렇지 않아도 불안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건강보험 개혁 좌절로 더욱 흔들리게 됐다. 백악관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외신들은 이미 공세에 나선 모습이다. ‘가짜 뉴스’ 문제로 대립각을 세웠던 CNN은 “굴욕적이다”, “법안이 죽어가던 순간에 골프대회에서 시간을 허비했다” 등 가시 돋친 발언들을 쏟아냈다.

CNN은 18일(현지시각)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앙의 벼랑 끝에 서 있다”고 그간의 행적을 총평했다. CNN은 “세제개혁안은 아직 젖먹이 단계며 인프라 투자계획은 실행이 불확실하다. 국가부채가 늘어나고 있는데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허풍을 친 것에 비해 자랑할 만한 성과가 없다”는 말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실패를 부각시켰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이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된 사실 또한 빼놓지 않았다. “건강보험 개혁 붕괴가 임기 첫 6개월의 대미를 장식했다”는 표현에서는 고소함마저 느껴졌다.

같은 날 뉴욕 타임즈의 칼럼리스트 데이비드 레온하르트는 트럼프케어의 몰락을 “진실의 승리”라고 불렀다.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 의원들이 “오바마케어의 긍정적인 면들을 매도하기 위해 지난 몇 년 간 거짓말들을 양산해왔다”고 맹비난한 그는 의회예산국과 의사·보험업자 등 관련업계 종사자 모두가 반대의견을 표한 것을 들어 트럼프케어가 현실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경제전문지 블룸버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실패가 정책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건강보험 문제의 교착상태가 지속된다면 세제개혁·인프라 투자 등 정부의 다른 재정정책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월스트리트의 분석을 실어 논지를 뒷받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웠던 경제 부양정책이 힘을 잃으면 투자 유치능력 또한 약해진다. 덴마크 삭소은행의 최고기술경영자 스틴 제이콥슨은 블룸버그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더 얻어맞는 만큼 달러화는 더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지시각 18일 오전 9시 30분에 94.89였던 미국 달러 인덱스는 두 시간 만에 94.52로 떨어졌다. 같은 날 주가는 S&P500 지수가 0.2%, 다우존스 평균 주가지수는 0.3% 하락했다.

◇ 일단 폐지하고 보자? 오바마케어의 명맥은

트럼프 대통령은 여느 때처럼 트위터를 통해 소회를 밝혔다. 그는 “우리는 민주당과 몇 명의 공화당원에게 패배했다”며 분열된 공화당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합법적 의사결정 방해(필리버스터)’ 제한조건을 60명 이상의 찬성으로 규정한 법조항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보다 이목을 모은 발언은 그 뒤에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고 그 다음 함께 멋진 건강보험제도를 만들어보자”며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해달라고 당부했다. 트럼프케어가 의회를 통과할 수 없다면 우선 눈엣가시인 오바마케어를 폐지하는 일부터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해당 트윗은 다음 주 중 오바마케어 폐지안건을 의회에 상정할 것이라는 미치 맥코넬 공화당 대표의 발언에 의해 구체화됐다.

다수의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현실성이 없다는 데 동의했다. 이미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트럼프케어에 반대한 상황에서 오바마케어 폐지안이 가결될 확률은 더 낮다는 의견이 이구동성으로 제기됐다.

의회전문지 더 힐은 “대안 없이 기존 건강보험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롭 포트먼 오하이오 주 공화당 상원의원과의 전화 통화내용을 보도해 공화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밝혔다. 또한 현재 시행 중인 오바마케어가 대체제도 없이 폐지될 경우 오는 2018년에는 1,800만명의 미국인들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의회예산국의 분석을 인용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한편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와 공화당 후보 자리를 놓고 다퉜던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는 뉴욕 타임즈에 저소득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세액공제 수준을 더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기고했다. ‘건강보험 앞에 놓인 길’ 제하 사설에서 그는 오바마케어가 저소득층의 부담을 가중시켰다고 비판하면서도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트럼프케어를 살짝 다듬는 것만으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실행 가능한 대안 없이 오바마케어를 폐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나쁘다”는 말로 백악관과 공화당 수뇌부의 주장을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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