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지난 첫 번째 글에서는 일상 속에서 날마다 하고자 하는 일에 쉽게 몰두하기 위한 기초적인 자기성찰법으로 ‘수식관’을 소개드렸습니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 없이 하루하루 그저 주어진 일과만을 위해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증거로 우리는 종종 남들이 보기에 열심히 살던 분들 가운데 어느 순간부터 초점을 잃고 방황하는 분들이나 또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는 분들에 관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무상(無常)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꿈과 희망이 담긴 멋진 나만의 ‘인생지도’ 작성은 필수인 것입니다.

◇ 전문인으로의 멋진 꿈 가지기

먼저 과학 분야의 보기를 들겠습니다. 1955년 ‘상대성 이론을 만들었던 아인슈타인 박사가 통일장 이론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다’란 기사가 뉴욕타임즈 1면을 장식했었습니다. 이때 일본계 미국인이었던 8살의 당찬 꼬마 미치오 카쿠는 이 기사를 접하는 즉시, ‘그런 일이라면 내 일생을 걸고 도전해 볼만하지 않은가?’라는 꿈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뉴욕시립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꿈꾼 대로 통일장 이론 분야에서 좋은 연구 업적들을 남겼으며 40대 무렵부터는 온몸을 던져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눈높이 강연과 저술 작업을 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예술 분야에 대한 보기를 들겠습니다. 화가 그랜마 모제스는 결혼 후 자녀와 손주들을 돌보는 동안에 소녀 시절 꿈꾸던 화가의 길을 접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집안 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다시 꿈을 떠올리며 72세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80세에 첫 개인전을 열었음에도 세상 떠나는 101살 동안 1,600점에 달하는 따뜻한 감동을 주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 수행자로서의 꿈 가지기

자기성찰과 깊은 관련이 있는 종교 분야에 대한 보기를 둘 들겠습니다. 첫 번째 보기로는 당(唐) 나라 때 호남(湖南) 지방에서 대활약을 한 석두희천(石頭希遷) 선사의 경우입니다. 7-8세 무렵에 절에 갔는데, 불상 앞에서 어머니께서 경건하고 절을 올리시면서 ‘이 분이 부처님이시다’라고 말씀하시기에 절을 하고 불상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이 분도 사람의 형상으로 손발 어디가 나와 다른가? 이 분이 부처라면 나도 존경받는 부처가 되리라’는 꿈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 후 중국 천하를 양분해 강서(江西) 지방에서 대활약한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와 쌍벽을 이루는 대선사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보기로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의 경우입니다. 스페인 귀족 청년으로 전쟁이 출전했다가 다리 부상을 당해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지내는 동안 마침 침대 옆 책꽂이에 놓여 있던 성인(聖人) 열전을 읽다가 크게 회심(回心)한 다음, 성인들의 삶을 본받기로 결심하고 수도자의 길을 떠납니다. 그 후 26세 무렵 만레사라는 스페인 시골 마을 어귀의 동굴에서 1년 정도 묵상 기도를 하다가 큰 깨달음에 도달하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예수회’라는 수도회를 창립했는데 그 후 세계적인 수도회로 성장하며 인류 영성에 크게 기여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의 현실을 세밀히 살펴보면 부모님들의 높은(?) 교육열과 함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오직 높은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 가기에 점점 더 혈안이 되어가고 있어, 꿈과 희망을 품는 것과는 거리가 너무 먼 것 같습니다. 또한 그 여파는 인성을 위한 가정교육, 학교교육 및 사회교육 모두 총체적으로 부실해져 이를 회복하기위한 범국민적 노력이 절박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결국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은 우리 모두 일생동안 신바람 나게 투신할 수 있는 전문인으로서의 ‘일인일몽(一人一夢)’을 갖는 동시에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인생여정 속에서 가치 있는 삶을 이어가기 위한 자기성찰에 꼭 필요한 것이 ‘인생지도’ 그리기라고 사려 됩니다.

◇ 몇 분 스승의 일대기 파악하기

우리가 교통이 복잡한 도심에서 약속모임을 가질 경우 처음 가는 곳이라도 약속 시간에 늦지 않는 가장 좋은 주된 교통수단은 구간마다 운행시간이 거의 일정한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지하철역에 내려 개찰구 근처 벽에 그려진 안내 지도를 보고 현 위치에서 목적지를 어느 출구로 나가는 것이 가장 빠른지를 확인한 후, 우왕좌왕 하지 않고 곧바로 목적지를 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필자의 견해로는 꿈을 효율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자신의 인생지도를 구체적으로 그리기 위해서는 종교를 초월해 자신과 코드가 맞는 적어도 서너 분 정도를 스승으로 삼고 이 분들의 일대기를 세밀히 살피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즉 나름대로 각자 이 분들의 일대기를 세밀히 살피며 각자의 ‘인생지도’를 그린 다음, 살아가면서 틈날 때마다 인생의 현 위치를 확인하며 각자의 삶을 지속적으로 이어다면, 누구나 뜻한 바, 자신만의 가치 있는 삶의 목표를 반드시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선 수행자인 저의 경우 서너 분은 ‘정각(正覺)’에 도달하고 일생동안 탁월한 눈높이 교육자로 대중들을 교화하셨던 ‘석가세존’과 ‘진리’의 정수를 담고 있는 선종 최후의 공안집인 <무문관(無門關)>을 저술한 남송 시대의 ‘무문혜개’ 선사와 <무문관>의 아쉬운 점들을 절묘하게 채워주고 있는 조선 중엽 <선가귀감(禪家龜鑑)>을 저술한 서산대사, 그리고 선도회 문하생들과 이 시대를 함께 하셨던 스승 ‘종달(宗達)’ 선사입니다. 한편 그리스도교인의 경우 세 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해 역사상 존경 받아오고 계신 신부님, 수녀님, 목사님들 가운데 서너 분을 택하면 좋겠지요.

그런데 스승님 한 분은 우리가 자기성찰의 태도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 때까지는 적어도, 언제든지 가르침과 조언을 주실 수 있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계신 분이어야만 합니다.

◇ 마무리하는 글

저의 세대는 중학교 때 입시가 있기 때문에 한 번 중학교가 정해지면 고등학교 2학년까지 평범하게 학교 수업을 따라가다가 고3이 되고 1년 정도 입시를 준비하며 나온 성적을 바탕으로 대학에 진학하였습니다. 그래서 저의 경우 별다른 꿈 없이 고2로 학년이 올라가면서 단지 적성에 따라 이과를 선택했으며 고3 입시 직전까지는 전공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원서를 쓸 무렵 입시 준비 중 물리 과목에서 가장 흥미를 느끼고 막연하게나마 아인슈타인을 존경하게 되면서 물리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진학 후 고등학교 때의 암기 위주 공부 방식에서 벗어나 논리적으로 추론해가는 방식으로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학업과 인생이 뒤죽박죽되는 1년간의 고뇌의 시기를 겪다가 종달 선사 문하로 입문한 20세부터 선 수행을 통한 자기성찰의 길을 걷게 되고, 또한 이 무렵 비로소 이론물리학자의 꿈이 담긴 ‘인생지도’를 구체적으로 갖게 됩니다.

참고로 자기성찰을 통해 마음이 안정되면서 자연스레 길러진 몰입의 힘은 연구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꿈을 실현하는데 지대한 기여를 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저를 돌이켜 보니 ‘생수불이(生修不二)’, 즉 전문인으로서의 길과 선수행자로서의 길이 둘이 아닌 향상의 여정을 이어가며 오늘에 이르고 있네요.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전공분야: 입자이론물리학)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한편 1975년 10월 임제종 양기파의 법맥을 이은 선도회 초대 지도법사이셨던 종달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스승이 제시한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이후 지금까지 선도회(2009년 사단법인 선도성찰나눔실천회로 새롭게 발족)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한편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께 두 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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