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은 SDGs의 빈곤 지표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사진은 서울의 무허가 판자촌.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지난 2015년 UN은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2030년까지 추진될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과제를 발표했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라는 이름이 붙은 이 목록에는 굶주림의 종결·깨끗한 물과 에너지의 보급 등의 기초목표뿐 아니라 산업‧인프라‧소비‧고용 등 경제전반에서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겠다는 소망까지 담겨있다.

◇ 분배지표에서 약점 드러낸 한국

한국은 지구의 보호와 모든 가난의 종결이라는 원대한 꿈을 담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얼마나 성실히 추진하고 있을까. UN의 SDGs 행동캠페인 웹사이트는 SDGs와 같은 가치를 추진하며 캠페인에 동참한 단체들을 표시한 세계지도를 제공한다. 116개 이상의 국가와 500개 이상의 기관·단체들이 표시된 이 지도에서 한국은 텅 빈 황무지로 남아있다. 이웃국가 일본이 교육기관과 지역공동체 등 6개 단체를 보유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의 SDGs 추진현황을 보여주는 그래프. 빈곤과 불평등 분야가 눈에 띈다. < OECD>

OECD가 지난 6월 국가별 SDGs 추진현황을 분석해 발표한 보고서는 한국의 위치를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한국은 169개 세부목표 중 12개를 달성해 슬로베니아·이탈리아 등과 비슷한 성취도를 기록했다. 거시경제와 인프라 항목에서 우월한 성취를 보인 반면 성 평등·사회 불평등과 같은 형평성 분야와 기후 문제에서는 OECD 평균에 심각하게 뒤떨어졌다.

특히 ‘빈곤’ 항목에서 낙제점을 받은 것이 눈에 띈다. 평균적인 OECD 국가들이 빈곤 타파를 위해 가야할 거리를 1로 추산한 그래프에서 한국은 목표점까지 2.7만큼 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경제력 상위국들이 다수 포진한 OECD의 자료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1인당 GDP가 한국의 절반 수준인 라트비아보다 뒤쳐진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다.

유력한 용의자는 불평등 지표에서도 확인된 소득분배 문제다. 해당 지표에서는 가장 잘 정비된 복지제도를 갖췄다고 평가받는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했으며, 평균 국민소득이 약 1만8,000달러인 체코의 경우 지니계수 0.247(2014년 기준, OECD 자료)로 대표되는 높은 소득분배수준을 앞세워 0.7까지 거리를 좁혔다. 반면 한국은 지난 2016년 지니계수‧5분위배율‧상대적빈곤율이 모두 악화됐으며, 특히 48.8%에 달하는 노인빈곤율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 중요성 높아진 ‘통계 컨트롤타워’… “통계청 지위 제고해야”

또 다른 문제점은 SDGs를 추진할 근거가 될 지표산정활동이 미진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SDGs 관련 통계자료 수집·가공·관리 활동은 ‘건강한 삶’ 분야에서만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 뿐, 지속 가능한 생산·불평등·도시기능·해양 보존 분야에서는 30% 미만의 성취도를 기록했다.

더불어민주당 심기준 의원이 국정감사를 앞두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SDGs와 관련된 업무를 전담하는 통계청 인력은 단 3명이다. 232개 지표로 구성된 SDGs를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적다. 작년에 집행된 예산 또한 지표개발 연구용역비 9,100여만원이 전부로, 국가주요지표 구축사업이 2013년에 15억원, 이후에도 3억5,300만원에서 5억원의 예산을 배정받았던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범부처적 이행체계가 마련되지 못한 점도 통계조사‧연구를 어렵게 만든다. 전문성이 검증된 통계청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야 할 터지만 심기준 의원실은 “차관급 중앙행정기관이라는 위치상 통계청이 국가통계활동 전반의 총괄조정 기능을 수행하기엔 한계가 명확하다”고 지적한다. 자연스레 통계청의 지위를 제고해 통합적 추진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편 통계청 관계자는 <시사위크>를 통해 “통계청이 SDGs 등 국가지표를 마련하는데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한다”며 현재 세부계획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국정감사 자료에서 언급된, 통계청이 부처 간 협력을 조율하는 ‘조정기능’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지금까지는 관련지표를 마련하기 위한 기반을 다졌다면 앞으로는 더 구체적인 연구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는 입장도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