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선체에서 희생자 유골을 발견하고도 5일 동안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야권은 일제히 김영춘 해수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선체에서 희생자 유골을 발견하고도 5일 동안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야권은 일제히 김영춘 해수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현장 실무자가 “유족들에게 알리라”라고 했던 김 장관의 지시를 무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장관 책임론’은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실무자에 대한 철저한 징계를 요구하는 동시에 김 장관을 격려하기도 했다.

김영춘 장관은 24일 국회 본청 앞에서 ‘사회적 참사법’ 통과를 촉구하기 위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 “실망감과 배신감이 당연히 크실 것이다, 계속 노력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김 장관은 자리를 떠나면서도 “죄송하다. 열심히 하겠다”고 거듭 사과했다. 유족들 사이에서는 “장관님 힘내십시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유족들은 이번 사건의 핵심인 세월호현장수습본부 이철조 본부장과 김현태 부본부장에 대한 구체적인 징계 절차를 물었다. 김 장관은 “조사 후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릴 것이다. 저희 조사가 미진하다면 다른 제3의 상부기관에 (조사를) 요청할 생각”이라며 “정부 안에 공무원 징계절차가 있으니 그것에 따라 징계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해수부는 이 본부장과 김 부본부장을 보직해임하고 대기발령을 내린 상태다.

야권은 김 장관의 자진사퇴 또는 문재인 대통령의 해임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진상조사는 사법기관에 맡기고 지금 김영춘 장관이 해야 할 일은 입에 발린 사과가 아니라 사퇴다”(장제원 수석대변인)고 했고 국민의당도 “해수부 마피아들에 둘러싸여 해수부 장관이 은폐에 은폐를 거듭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김철근 대변인)고 김 장관 해임을 촉구했다.

하지만 “절차에 따르라”는 지시를 실무자들이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김 장관은 ‘직접 책임’을 피해가는 모양새다. 김 장관은 이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이번 사태에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느냐”는 권석창 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현장 책임자가 자의적인 판단과 인간적 정에 끌려서 지켜야 될 절차와 의무를 어기고 함부로 판단해서 국민적 의혹을 크게 불러일으키고 해수부 조직 내 기강·체계를 무너뜨린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답했다.

세월호 유족이 직접 “유골이 한 조각씩 나올 때마다 언론에 공개하지는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도 여론의 흐름을 바꾸는 한 축이다. 고 조은화 양의 어머니 이금희 씨는 복수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뼛조각도 못 찾은 가족들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기 때문에 김 부본부장에게 뼈 확인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리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었다”는 내용을 전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정의당 윤소하 의원과 4.16연대, 4.16가족협의회,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관계자들이 사회적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수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를 촉구 및 세월호 유해 은폐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무엇보다 이날 처리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에 반발했던 한국당이 이번 일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사회적 참사법은 세월호 2기 특별조사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 법안이다. 이날 한국당은 해당 법안을 민주당·국민의당과 공동 발의하기로 했다가 포기했고 본회의에서 상당수의 의원들은 표결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김 장관의 거취에 대해서는 “거론할 단계가 아니다”고 수습하고 있다. 박주민 의원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로는 김 장관이 처음부터 알았다거나 또는 보고가 늦게 이루어지는 과정에 개입했다거나 한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해수부 내의 세월호 인양 문제라든지 이런 것에 소극적 비판적이었던 분들에 대해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세월호 유골 은폐 사건은 김 장관의 해임이나 사퇴보다는 해수부 조직 전체를 쇄신하는 쪽으로 수습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김 장관은 현안보고에서 “(유족들이)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 원인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해수부 안에 적폐청산을 진행해 달라.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철저히 해달라고 했다”며 “해수부 조직 전체 쇄신과 공직기강을 이뤄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제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 그러고도 제가 또 다른 책임을 져야 된다면 그때 가서 지도록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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